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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카쿠배 경제학

tiobi 2022. 2. 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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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수학 공부를 하기 위해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했다. 그 서점은 오전에 책을 주문하면 오후에 책을 받아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로 유명했는데, 하필 내가 읽고 싶던 책은 상품 준비에 며칠이 걸린다고 적혀있었다. 내가 그 책이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었고, 며칠 뒤에 받아보아도 전혀 문제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왠지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구매를 꺼렸었다(적립금과 상품권 때문에 결국 주문은 했다.)

 

한국의 물류 시스템은 실로 엄청나다. 익일 배송은 이미 너무 당연시되었고, 많은 물건들은 당일 배송, 새벽배송으로 받아볼 수도 있다. 나처럼 3, 4일 걸려 상품을 받는 경우는 나쁜 의미로 흔치 않다. 내가 외국에 거주했을 때는 택배 기사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왔던 것을 기억해보면,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빠른 물류 배송 시스템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한국의 영토가 작고, 인구의 대부분이 수도권과 지방 광역시에 몰려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런 이유 때문에 빨리 빨리를 쉽게 정당화하는 한국인의 습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코로나19사태로 인해 기업과 소비자가 간접적으로 컨택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배송의 품질에 더욱 많은 가중치를 두고 쇼핑을 하는 것 같다. 조금 더 돈을 내더라도, 내가 원하는 물건이 없어서 비슷한 다른 물건을 구매하더라도 빠르게 물건을 받아보기 위해 새벽배송을 해주는 쇼핑몰로 사람들이 몰린다. 이것은 상품을 받아보는 마지막 순간이 모든 구매경험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과 소비자가 최종적으로 만나는 순간에서 기업이 소비자에게 부정적인 경험을 제공하면 그 기업은 소비자 이탈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많은 기업이 end-to-end에 집중하고 있다. 제품의 생산부터 판매와 배송까지 모든 순간에 소비자의 불편함을 해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서비스는 소비자가 많은 배송상품의 쓰레기 처리에 어려움을 겪자, 많은 배송물을 한 데 모아 포장지를 제거하고 난 후에 다시 소비자에게 상품을 배송해주는 서비스였다. 소비자는 업체가 물품의 포장지를 제거하고 나에게 상품을 배송해주기까지 며칠을 추가적으로 기다리는 대가로 내가 직접 포장지를 버리는 부정적인 경험을 제거할 수 있다. 무조건 빠른 배송이 능사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 경험이다.

 

나도 소비자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 어떤 디자인을 해야 하는지, 어떤 기능을 제공해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다. 가성비의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났고, 이제는 가심비가 중요해진 것 같다. 더 좋은 경험을 하기 위해 돈을 추가적으로 지불할 용의가 있는 소비자들을 잡아야 한다.